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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눔

주름과 음이탈

2024-08-02

 
'주름과 음이탈' 
오늘 아침 기도를 마치고 성당을 나서며 마음 한 켠에서 올라온 화두이다. 
 
아침 성무일도를 바치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저 건너에서 들려오는 할머니 수녀님의 기도소리가
마음 가까이 다가와 울렸다. 그냥 표면적인 얘기를 하자면 '음이탈'이다. 
우리가 부르는 선율과는 다른 어떤 調 를 읊으시듯, 또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시듯 
그렇게 성무일도 기도를 노래하신다. 물론 박자도 우리와 다르시다. 
수녀님의 소리를 따라가다보면 나도 어느새 오선지 밖의 음을 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 음을 놓치지 않으면서 수녀님의 기도에 내 기도를 얹는 건 
조금은 '기술'이 요하는 작업일 수 있겠다. 
 
우리는 매일 아침, 저녁, 수녀원 성당에 모여 함께 성무일도를 노래로 바친다. 100여명이 함께. 
혼자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화음이 울려퍼지는데 때로는 아름답고 
또 때로는 화음이 잘 안 맞아서 분심이 들기도 한다. 
성무일도는 '시간경'이라고도 하는데 우리의 시간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세상을 위한 기도, 이 자리에 없는 모든 세상 사람들의 마음까지 얹어 하는 기도이다. 
가끔은 나의 기도가 부족해도 매일 공동체와 함께 드리는 이 기도로 
내가 닦여지고 길들었지 ... 하는 생각을 한다. 
 
일반 수녀님들의 음이탈은 조금 분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할머니 수녀님들의 음이탈은 오히려 감사하고 찡한 느낌까지 든다. 
긴 수도여정의 끝자락에서 이제는 잘 보이지도 잘 들리지도 않는 
할머니 수녀님의 소리에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함께 노래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름진 소리를 숨기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름진 소리를 공동체의 노래에 계속 얹어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수도공동체가 136년이라는 짧지않은 세월을 함께 걸어왔기 때문에 
지닐 수 있는 소리이다. 
 
우리가 성가대나 합창단이라면 고려해야 할 소리이지만 
우리의 성무일도는 기도이기에  '늙은 소리'라고 무음처리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나의 소리는 아직 젊고 곱고 예쁘다. 
그러나 우리 할머니 소리를 따라가지는 못한다. 
 
이렇게 우리 수도 공동체에 새겨지는 세월의 '주름'을 생각하며 
8월의 둘째 날 아침을 지난다. 
 
 
Sr. 이 글라라   2024.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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