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문학의 내용보다 형식의 가치에 집중하게 돼요 ...
당장은 문학이 우리 삶의 문제들을 돕지 않는 듯 보여도
천천히 우리를 돕는다고 생각해요 ..." (작가 김애란)
'형식의 가치' The value of form over content ...
김애란 작가의 이야기를 몇 번 돌려 보다가 문득
수도생활의 가치를 '형식 form'으로 바라봅니다.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수많은 실망들과 불만들은 형식이 아닌
내용 때문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수도생활을 하나의 'form' 이란 가정하에 생각을 이어갑니다.
저는 저의 수도성소에 대한 응답으로 삶의 Form 을 받았습니다.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를 통하여 수도생활의 틀을 받은 것입니다.
수도생활 안에는 '기도와 공동체'라는 큰 두 기둥의 form 이 저절로 주어집니다.
다른 한 편으로, 수도자를 축성생활자라고 부를 때는 형식보다는 내용이 앞섭니다.
'축성된 사람'은 형식으로 이해되기 보다 내용으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저를 감싸고 있는 이 존재의 정체성이 '축성된 사람'인 것이고
세부적인 내용들은 수도생활이라는 form 안에서
불리움 받은 사람들이 각자, 그리고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수도 공동체는 Form 을 제게 내어준 것으로 이미 충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내용을 채우는 것은 여기 모여 사는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가 채우는 삶의 내용이 우리가 받은 Form 을 새롭게 하는 것이고,
그제서야 '기도와 공동체'라는 두 기둥 옆에 '사명(Mission)' 이라는 또 하나의 기둥을 함께 세우는 것!
제 마음 안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집니다.
악보도 처음에는 그저 하나의 form 으로 제시됩니다.
연습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그 form 에 온갖 내용들이 채워지고 그러면서 음악이 되어 갑니다.
세상에 필요한 것은 악보 자체가 아니라 그 악보가 품고 있는 음악입니다.
악보의 존재 이유는 그러니까 음악의 출산인 것이고
그래서 연주자가 생겨났습니다.
저의 수도 삶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해봅니다.
수도생활이라는 구조적인 틀 안에서 기도하고 친교를 나누며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꾸준히 이어지는 수도자들의 소박한 일상이
하늘에 물들어 수도원 담장을 넘어갈 때,
수도생활이 / 축성된 봉헌생활이 해산하는 날이요,
잔칫집에 포도주로 배달되는 그 날이 올 것입니다.
수녀원에서 서른 두 번째 '성소주일' 을 맞이했습니다.
감격스러움이 고요하게 물든 오늘을 봉헌합니다!
2026. 4. 26. Sr. 이 글라라